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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정취암

사찰

by 난 그림자 2017. 5. 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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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산청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 상서로운 기운이 금강에 비견된다 하여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리던 대성산이 있다. 이 산 중턱 기암절벽에 기대어 둥지를 튼 암자가 정취암이다. 해인사 말사인 정취암은 전각이 많지 않은 작은 절이지만, 해인사도 갖지 못한 보물을 품었다. 절 앞으로 펼쳐지는 산천 풍경이 그것이다.

산청에서 진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산청대로)를 벗어나니 길은 산으로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길에는 벚나무와 소나무가 서로 마주본다. 사철 푸른 소나무와 달리 벚나무는 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듯 벚꽃의 화려함을 벗어낸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꽃터널을 이뤘을 법한 길이다. 연분홍과 초록이 공존하는 덕분에 길은 지루하지 않다. 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아 여유롭기까지 하다.
정취암 이정표를 보고 작은 도로로 들어선다. 꽃나무는 사라지고 한 줄기 길만 오롯이 나 있다. 산허리를 넘어왔건만, 길은 훨씬 높은 경사를 유지하며 산허리를 감고 돈다. 돌고 돌다 보면 산 중턱 절벽에 절이 걸려 있다. 정취암이다. 포장된 길을 올라가면서도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걱정이 든다. 물론 부질없는 걱정이다. 절 앞까지 도로가 나 있어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승용차로 편안하게 정취암에 닿을 수 있다.
정취암 입구. 나지막한 돌담을 두른 전각 몇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는 이를 기죽게 하는 위압적인 규모가 아니다. 시골집처럼 아담해 마음이 편안하다. 담장 뒤로는 몇백 미터 절벽이다. 누가 이런 곳에 절을 지었는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 옆 안내문을 보니 절의 역사가 의외로 길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6년(686)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좇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세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정취사로,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암 대종사와 성철 대종사가 주석했다.







이녀석 불러도 꼼짝을 안하더군요












거북바위 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소나무가 죽었습니다






고사목이지만 멋집니다










떨어질것같은 불안감이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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