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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본리세거지

사적지

by 난 그림자 2017. 6. 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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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에 되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리며

혹시 사진이 필요하시다면 원본을 보내드리껫습니다


1995년 5월 12일 대구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남평문씨() 문중에서 소장·관리하고 있다. 총규모 11,701㎡(3,546평)에 이른다.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와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1715년에 문재철()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터를 닦았다고도 한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명당터라 한다. 그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집을 짓고 세거하였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 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있다.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나지막한 담을 쌓았으며,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곳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수봉정사()와 광거당()·인수문고 () 등이 있다. 특히 수봉정사는 대표적인 건물로 세거터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도 열던 큰 건물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광거당은 1873년 후은공()과 문성공()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후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로 쓰였다.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위의 서적과 규장각 도서를 포함하여 1만 여 권의 도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의 서고를 후에 크게 지었고, 그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도서열람실도 따로 꾸며 놓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평문씨본리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


남친과 함께온 처자 이쁘더군요































엄마랑 함게나들이온 처자 입니다 함께 마을을 다녓습니다









여기가 포인트 줄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분위기 탓인지 여자분들 모델이 되어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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