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
분황사는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다. 또 앞마당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전석탑이 있어 경주시내 답사에서 빠지지 않고 찾게 되는 곳이다. 원효대사는 한국 불교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잠든 어느 날 저녁 목이 말라 해골에 든 물을 마신 것을 계기로 모든 진리는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후 신라로 돌아온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설총을 낳기도 하였으며 시대의 위대한 설법가요 이론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를 대중화시켰다는 것과 교조적인 해석으로 나뉘어져 있던 불교의 통합을 위한 이론인 화쟁사상을 제시한 데에 있다고 하겠다.
원효를 기리기 위해 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우물가에 받침대만 남아 있다.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에 추사 김정희가 찾아서 ‘차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새겨놓았으니 찾아보도록 하자. 벽돌을 쌓아 만든 모전석탑은 3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이라 추정되며 1층에는 각 방향으로 문을 만들고 안으로 감실을 만들어 놓았다. 감실을 지키고 있는 인왕상은 모두 모양이 다른데 7세기경 신라 조각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석탑을 지키며 당당하게 서 있는 돌사자도 세월의 흔적은 피하지 못했지만, 그 생김새는 여전히 당당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분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