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신문왕 6년(686)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좇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세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정취사로,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고, 현대에 와서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암 대종사와 성철 대종사가 주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암절벽에 매달려 산천을 품은 암자 '산청 정취암'